Ⓒ Tai Ping, Prismatic I Rug
원
완벽, 공평의 아름다운 도형
Ⓒ Muuto, The Dots
직선과 각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삼각형 등의 도형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인상을 주곤 한다. 그러나 원은 다각형의 도형에 비해 어딘가 이지적이고 모호하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 손으로 만든 경제와 예술, 건축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원(圓)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우리가 가장 즐겨 사용해왔고, 가장 가까이에서 접해왔으며 가장 경외하는 도형이다.
Ⓒ Cristina Celestino, Mattia Balsamini
Ⓒ Ionna Vautrin, Cyclope Moustache
밤하늘의 보름달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또, 물 위로 퍼지는 동심원을 바라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우리는 동그란 형체를 가진 사물, 또는 현상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알 수없는 안정감을 느낀다. 자연 속에는 보름달이나 동심원 외에도 무수한 원의 형태가 존재한다. 나무의 단면과 열매 맺는 과일들. 어디 그뿐이랴, 당장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조차 우주에서 보면 둥근 구(球)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원형에 이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일지 모른다.
Ⓒ Eno Studio, OLYMPIC Coat Hanger
Ⓒ Eno Studio, Clothes Rack Coat Hanger
지난 수 세기 동안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원형에 끌리는 이유’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1921년 스웨덴의 심리학자 Helge Lundholm은 선, 도형을 그려 감정을 표현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피실험자들은 ‘딱딱하다(Hard)’, ‘거칠다(Harsh)’, ‘잔인하다(Cruel)’라는 단어를 표현할 때 모난 선과 각진 도형을 사용했고, ‘부드럽다(Gentle)’, ‘조용하다(Quiet)’, ‘온화하다(Mild)’를 표현할 때 곡선, 원을 주로 사용했다. 이후로도 수 년간 감정과 선, 도형의 유형을 연관시키고자 했던 다른 연구들은 Lundholm의 이런 발견을 뒷받침해왔다.
Ⓒ Federica Biasi, Jolie
Ⓒ Xavier Lust, Gun Metal Chair
활자술, 타이포그래피는 이와 유사한 분석의 대상이 되어왔다. 1968년 심리학자 Albert Kastl과 Irvin Child가 실시했던 연구는 피실험자들이 ‘긍정적인 가치’, 예를 들어 ‘활기 넘치는(Sprightly)’, ‘반짝거리는(Sparkling)’, ‘꿈을 꾸는 듯한(Dreamy)’, ‘원대한(Soaring)’ 등을 표현할 때 둥글게 굽어지고 가벼운 활자와 Sans-serif 서체를 서로 어울리는 요소로 연결 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Eno Studio, B4 & B5 Vases
Ⓒ Cristina Celestino, Orfeo
2011년에는 한 인류학 연구소에서 5개월 미만의 영아를 대상으로 아이 트래킹(Eye Tracking: 시선추적) 실험을 진행했다. 완성된 단어를 말하거나 낙서를 하기 이전 단계의 아기들에게 여러가지 도형, 선 등의 시각자료를 보여주어 어떤 유형을 선호하는지 파악해본 결과, 아기들은 각이 지고 모난 시각 자료보다 곡선, 타원, 원형 등 ‘부드러운’ 시각 자료에 더욱 집중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리가 원과 곡선에 이끌리는 것이 후천적인 습득을 통해서가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싣게 됐다.
Ⓒ Muuto, The Dots
위와 같은 무수한 사례들은 명백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할 뿐이다. 바로, 우리 중 대다수가 선호하는 것들은 각이 지고 모난 것이 아닌, 굽어진 것, 둥근 것, 원(圓)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위협과 부상을 암시하는 날카로운 각도, 뾰족한 모서리를 가진 물체를 외면하려 한다. 비록 자연의 위협이 줄어든 21세기에도 이런 본능이 이치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다치게 할 위협이 없는 듯한 형상을 선호한다.
Ⓒ Eno Studio, Maison&Objet Janvier 2017
기하학에 있어서 원이 가지는 상징성은 날카로운 각과 뾰족한 모서리가 없어 부드럽고 편안하다는 점 이외에도 다양하다. 원형은 회전하는 바퀴처럼 지속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거나 표면 위의 구멍을 뜻하기도 한다. 원은 또한 공평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질도 품고 있다. 아서왕과 그의 가신들은 왕을 제외한 모두가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원탁에 앉았고, 이후로도 ‘원탁’은 공평한 대화, 대등한 관계를 상징하게 됐다. 한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원형을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았다. 원은 시작도, 끝도, 옆면도, 모서리도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의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에도 이어져, 원은 온전한 것, 완벽을 상징하며 우리 주변의 많은 곳에서 쓰이고 있다.
Ⓒ Eno Studio, Favourite Things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떤 원형의 사물이 함께했는가? 눈을 뜨고 처음 들여다본 시계에도, 당신의 아침을 깨워준 커피잔에도, 퇴근길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의 달에도 완벽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덕분에 당신의 하루도 조금 더 완벽하고 아름다웠을지 모른다.
Ⓒ Eno Studio, SOCOA
완벽, 공평의 아름다운 도형,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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